댕겨 왔슈_2019

지리산 1무2박4일 여행길 이야기191023

영동양반 2023. 2. 1. 20:02

산행일시 : 2019년10월23일(수) ~ 10월26일(토)

산행일정 :  10/23일 : 수원역(저녁 11:15 - 구례구역(24일 03:05도착) /21,000, 구례구역03:15~ 구례시외버스 터미널/1,000 - 성삼재(04:10착)/ 4,500

        10/24일 : 성삼재 - 코재(중석대 /우번암 취소) - 노고단대피소 - 문수암 -돼지령 - 피아골삼거리 - 임걸령 - 노루목 - 묘향대 - 삼도봉 -화개재 -  토끼봉 -

                        명선봉 - 연하천대피소

          10/25일(오전) : 연하천 대피소 → 삼각고지 → 형제봉 → 벽소령대피소 → 덕평봉 → 선비샘 → 칠선봉 → 영신봉 → 세석대피소

                     (오후) : 세석대피소→ 촛대봉 → 삼신봉 → 화장봉 → 연하봉 → 일출봉 → 장터목대피소

                                 50미터 나무계단 가기전 우측으로 영신대 찾다가 포기하고 나옴(잘못된 인터넷 정보)

           10/26일 : 장터목대피소  → 제석봉 → 통천문 → 지리산 천왕봉 → 개선문 → 법계사 → 로타리대표소 → 순두류 → 중산리탐방안내소 → 중산리 버스주차장

 

산행 거리 : 32.07Km = 지리산 천왕봉 정상까지 26.93km +  문수암(노고단대피소 -돼지령) + 묘향대왕복(소금장수무덤-묘향대)

 

성삼재 →코재(중석대 우번암 짙은 안개으로 포기/편도 1.2km)→ 무넹기→노고단대피소 → 노고단 옛길 삼거리 → 직진하면 감시카메라

노고단 방향 100미터 지점에서 우측사면 오름 → 중계소 도로복귀 → 중계소 정문앞도로 50m전 가드레일넘어 → 중계소 철조망끝 지점으로 이동(케이블 등로있음) →  산죽밭/너덜지대통과 → 문수암(1320미터,중계소에서 15분 정도 소요) → 문수암해우소 방향 → 서울대 부속남부연습림(41-12) → 암자터(움막터) →

왕시루봉 능선삼거리( 20분소요,우측은 왕시루봉길매재/좌측은 노고단 길상봉) →(노고단 길상봉쪽으로 추천_노고단 우량계능선에서 우측으로 가는것 20분)

(몇미터 오르다가 돼지령가는 희미한길으로 감) → 왕시루봉 능선 초입부에 있는 조난산악 표지목 → 돼지령 → 피아골삼거리 → 임걸령 → 임걸령쉼터 →노루목 → 소금장수무덤 →  묘향대 왕복 → 삼도봉 → 화개재 → 토끼봉 → 명선봉 → 연하천대피소 →삼각고지→ 형제봉 → 벽소령대피소  → 덕평봉 → 선비샘 →

칠선봉 → 영신봉 → 세석대피소 → 촛대봉 → 삼신봉 → 화장봉 → 연하봉 → 일출봉  → 장터목대피소 →제석봉   →통천문 → 지리산 천왕봉(13:34) → 개선문 →

→ 법계사 →로타리대피소 → 순두류 → 중산리 버스주차장

 

* 성삼재에서 종석대 우번대/문수암 가는 방법

   1). 성삼재에서 탄방지원센타쪽으로 왼쪽 첫번재 화장실 맞은편으로 신속하게진행하면 됨(센타 창원에서 감시하고 있음) 종석대가나오고 우번대를 갈수 있음

   2). 코재으로 내려 갈때 조심 - 무넹기(콘크리트 임도) 내려가기전에 이동통신 안테나에서 좌측 옆으로 내려가야함(카메라)

   3). 코재에서 출입금지 철문을 통과할때는 카메라가 있어 스님 애마 뒷으로 사면 올라 등로으로 복귀하고 차일봉삼거리(15분)에서 우측으로 진행하면

        우번대 별채지나 30 ~40 미터 진행하면 우반대가 나온다. 우번대에서 종석대오르는길은 (채소밭)에서 우측으로 진행하면서 능선을 오르면 될것 같음.

   4). 무넹기에서 100미터 진행후 화엄사 (우측으로) 가는 삼거리이고 계속 직진하여 좌측에서 올라오는 나무계단(성삼재), 여기에서 50미터 정도 진행,

        우측에 특고압 표시판 푯말과 산으로 진입하여 오르면 중계소 오르는 콘크리트 임도 나옴 철문넘어 좌측으로 끼고 진행하면 된다.

        노고단 장상석에서 감시 당할수 있고 노고단 중계소 초소에서 연락할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 노루목 번야봉 에서 묘향대/소금장수무덤에서 묘향대 가는 방법

       (반야봉에서 삼원/달궁방향으로 약 400미터 떨어져있는 중봉의 헬기장 바로 옆 북쪽에 조그만 무덤(연안김씨 묘비명 있슴)이 있다.

      그 무덤 앞에서 작은 구상나무 두 그루 사이로 떨어지는 길이 묘향대 가는 들머리고 길따라 내려가면 묘향대).

    1). 반야봉 정상석 뒷쪽 금즐 넘어 인간 배설물 조심 - 헬기장(출입금지 표시판/5분) - 중봉 무덤 비석(좌측은 심마니능선 우측으로) - 구상나무연리지(5분) -

        좌측바위두고 가파른길 - 묘향암 직전 삼거리(좌측 이끼폭포 우측으로) - 묘향대 안내 표시석(여기에서 묘향대 20 ~30미터) - 반야 중봉에서 25분 정도 소요됨

    2). 석간수 우물옆으로 주등로따라 수평으로 산 허리를 돌고 돌아 40분 정도이면 주등상로 입구 도착 - 출입구쪽 카메라 있슴 주의

        ( 15미터전 흰색 차돌바위 사면 올라치면 등로 카메라 보임 - 카메라 우해하면 반야봉에서 내려오는 길에 닿을수 있음

    3). 노루목삼거리에서 삼도봉 방향으로 진행 반야봉 가는 이정표 지나 바로 좌측으로 나 있는 길이 묘향암 가는 들머리다.

      들머리 우측에 소금장수 묘지 있다가기전 좌측으로 반달곰 출입금지 표시석 있슴. 입구에 카메라 있음

   4).삼도봉에서 노루목 방향으로 10여분 진행하면 좌측에 소금장수 무덤이 있고 곧 바로 우측에 반야봉 가는 이정표가 있으며,

      비스듬히 우측으로 반야봉 올라가는 길이 뚜렷하다.

(믿거나 말거나  우번암 창건과 관련된 전설)

 우번암 전설_ 하나

 

 문수보살을 수행하던 길상동자가 들길을 지나다가 탐스럽게 잘 익은 조의 알곡을 손바닥 위에 놓고 바라보다가, 조 알곡 세 알이 손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길상동자는 알곡을 버릴 수가 없어서 입안으로 털어 넣고 먹어버렸다.

 그것을 바라다보던 문수보살이 동자에게 "너는 농부가 애써서 일군 곡식을 세 알이나 먹었으니 그 업보로 3년 동안은 소가 되어 그 밭 주인집에서 업 갚음을 해야겠다고

 말했다. 그 말이 끝나자 길상 동자는 소로 변해버렸다.

 소가 되어 그의 밭 주인집에서 일 한지 어느덧 3년이 되던 어느 날 해질 무렵 그 밭 주인이 방에 있는데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서 문을 열어 보니 소가 주인을 돌아보면서

 "주인장! 3년 동안 일을 하여 빚을 갚았으니 떠납니다." 라는 소리가 들려 문을 열고 보니 소가 문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주인은 깜짝 놀라 소를 따라가 보니 상선암(上仙岩) 위에 수염이 하얀 노인이 있어 소를 못 보았느냐며 물어보니 노인이 하는 말이

  "소의 껍질을 저기 죽어 있고 주인은 이 쪽에 있는 오두막에서 자고 있소"라고 하여 오두막 안을 들여다보니 잘 생긴 동자가 곤하게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 노인에게

 물어보려고 상선암 위를 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까 현신했던 문수보살도 없어 졌고 다시 보니 어린 동자도 오두막과 함께 살아져 버렸다.

 그 후에 그 자리에 문수의 현신을 기리기 위하여 우번암을 창건하였다.

 

 우번암 전설_ 둘

 신라의 고승 우번조사가 젊은 시절 조용한 상선암을 찾아 10년 수도를 결심하고 혼자 수도 정진하기를 9년째 되던 어느 봄날, 절세미인 한사람이 암자에 나타나

 요염한 자태로 우번을 유혹하였다. 여인에게 홀린 우번은 수도승이란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여인의 뒤를 따라 나섰다.

 그 여인은 온갖 기회요초가 만발하고 아름다운 수림속을 지나쳐 자꾸만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우번은 여인을 놓칠까봐 산속을 헤치며 정신없이 올라 가다 보니 어느덧 차일봉 정상에까지 오르게 됐다.

 그런데 우번을 유혹하던 여인은 간데 없고 난데없이 관음보살이 나타나 우번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우번이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해 보니 이는 필시 관음보살이 자기를 시험한 것이라 깨닫고 그 자리에 엎드려 자기의 어리석음을 뉘우치고 참회하니

 관음보살은 간데 없고 대신 큰 바위만 우뚝 서 있었다.

 자신의 수도가 크게 부족함을 깨달은 우번은 그 바위 밑에 토굴을 파고 토굴속에서 수도하여 후일 도승이 되었다 한다.

 우번도사가 도통한 그 토굴자리를 우번대라 부르게 됐으며, 또 우번조사가 도통한던 그 순간에 신비롭고 아름다운 석종소리가 들려왔다하여 이곳을 종석대라 부르며,

 관음보살이 현신하여 서 있던 자리를 관음대라 부르게 되었다.

 

 문수암은 1803년 화엄사 스님은 초운대사께서 창건했다고 합니다.

 그 후 6,25이후 폐허가된 칠불사에서 천막을 치고 수도하던 평전스님(현 수도암 주지)께서 묘향대에서 지내시다 문수대를 복원하여 거쳐했다고 합니다.

 창건 이전에는  신라의 원효 성사와 의상 대사가 주석했고 임진왜란 이후에는 승장(僧將) 청매 선사(靑梅禪師)와 이 충무공의 군사(軍師) 자운 선사(慈雲禪師)가

 머물렀고 화엄사 중창주이신 벽암 선사(碧巖禪師)와 그의 제자들의 발자취가 드리워져 있다고도 합니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니 문수암의 옛날 모습이 담긴 사진이 있어 올려 봅니다.

'지리산아흔아홉골'에 게재되어 있는 글과 사진입니다.

 

(퍼온글)

아래 글은 <강위수>선생님께서 1991년 발행된 어느 에세이집에 [인연]이라는 제목으로 실어놓은 글입니다.


인연(因緣)

몇 해 전 나는 모 일간지에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란 제하의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 때 나는 그 글의 주인공으로서 지리산 노고단 근처 초막에서 잠시 만났었을 뿐 이름도 알지 못하는 어느 스님의 이야기를 썼다.
심 수년전 이른 봄, 나는 혼자서 구례 화엄사에서 노고단을 경유하여 피아골로 빠져 내려오는 지리산 산행을 한 일이 있었다.

그 때 나는 등산로를 몇 차례 다녀본 경험이 있는 노고단-임걸령-피아골 코스를 이용하지 않고,
노고단 정상에서 화엄사 오른쪽 등선인 왕시루봉 줄기를 타고 내려오다 질마재에서 피아골로 빠지는 새로운 코스를 택했다가 길을 잃었다.
그래서 한 시간 여 길을 찾아 관목숲을 헤매다가 뜻밖에도 초막집을 한 채 발견했다.

노고단 정상의 동편 능선 어디쯤 되는 그 곳에는
산죽으로 지붕을 해 이고 통나무를 엮어 벽을 만든 작은 귀틀집이 한 채 있었고,
이십여 평쯤 되게 평평히 골라진 앞마당에서는 젊은 스님 한 분이 봄볕을 쪼이고 앉아 나무지팡이 손잡이에 조각을 새기고 있었다.

4십리나 나가야 인가를 접할 수 있고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는 눈에 갇혀 살아야 하는 외로운 초막에서
벌써 삼년 동안이나 단신으로 수도생활을 해 온다는 그 젊은 스님과 나는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 기회가 있었고,
등산로를 안내 받아 무사히 산행을 마칠 수가 있었다.

그 후 전혀 예상 밖의 장소에서 뜻밖에 만난 그 스님의 인상은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편린으로 남아있다가 몇 줄 써야 하는 글의 소재가 되기도 했으나, 그 만났던 초막의 명칭도 그 스님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1969년 노고단 아래 관목숲을 헤매다 만난 당시의 귀틀집 문수대*

 


나는 벌써 이십 수년간이나 산행을 취미로 해왔다.

지난 해 겨울에도 지리산을 다녀왔으나, 폭설 때문에 당초 목표로 삼았던 영원사골에서 출발해 지리산 허리인 벽소령을 넘어 쌍계사로 내려오는 예정 코스를

변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뱀사골 입구에서 달궁.심원계곡으로 이어진 대로를 따라 노고단을 경유해 천은사로 내려와서 하루를 묵고,
이튿날 차편으로 목적지인 쌍계사까지 올 수 있었다. 쌍계사를 둘러보고 기차를 타기 위해 구례구까지 나오는 길은 택시 편을 이용했다.
쌍계사 근처 마을에서 태어나 거기서만 살았다는 젊은 택시 운전사는 친절하고 아는 것도 많았다.

그를 상대로 지리산 주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섬진강 둑길을 따라 달리는 택시는 피아골 입구인 외곡까지 오게 되었고, 그곳에서는 풍채 좋은 중년 스님이 차를 세우고 합승을 청하였다.
내게 양해를 얻어 그 스님이 동승하게 되자, 운전사는 그와 잘 아는 사이인 모양으로 서로 안부를 묻는 인사말을 시작으로 그들 주변의 이야기가 분주하게 오고 갔다.
택시는 구례읍에 당도해서 그 스님을 내려놓고 다시 기차역이 있는 구례구를 향해 달렸다. 운전사는 그 풍채 좋은 스님이 연곡사의 주지스님으로
사변 때 불타버린 절을 다시 세우는 데 큰 공을 쌓은 훌륭한 분이라고 묻지도 않은 스님 소개를 했다.

나는 그 스님으로 비롯해 문득 생각이 떠올라 운전사에게 노고단 근처의 초막암자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반색을 하고 자기도 그 곳을 가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십여 년 전에 거기서 만났던 젊은 스님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운전사는 깜짝 놀라며 좀 전에 택시에 합승했던 중년스님이 바로 그곳에서 공부를 하던 그 젊은 스님이라는 것이었다.

그 스님과 나는 십여 년을 격하고 다시 만나는 연(緣)을 맺게 되었으나 대화 한마디 나누지 못한 채 그냥 헤어진 것이다.
그러나 억겁(億劫)의 윤회과정에서 보면 이승은 순간에 불과할진대
당세에서 벌써 두 번씩이나 대면의 기회가 주어진 것은 업(業)에 의한 인연(因緣)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례읍에서 구례구까지의 잘 포장된 도로를 달리는 택시는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했고, 나는 얼마 남지 않은 기차 시간을 대기위해 황망히 택시에서 내렸다.
그리고 기차역을 향해 분주히 몇 걸음 옮기다가,
문득 그 초막암자와 스님의 이름을 물어보지 않은 것을 생각하고 뒤 돌아 보았으나, 
택시는 이미 저만치 달려가고 있었다.

 

묘향대(퍼온 글)

 

      묘향대는 행정구역은 전북 남원시 산내면 부운리이다. 

 지리산의 큰 골짜기 뱀사골을 모두 발 아래에 둔 장대한 풍광을 간직한 절 집 묘향대(1500m)는 남한에서 현존하는 사찰 중 가장 높은 곳이다.

 신라 때 창건돼 1천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대형사찰인 화엄사의 말사에 해당되며,지리산 반야봉 신록이 감춰둔 한국불교의 마지막 전설이 묘향대이다. 

묘향대(妙香臺)는 문수를 한역을 하면 묘수(妙首), 묘덕(妙德), 묘길상(妙吉祥) 등이 된다.

 다시 말하면 문수의 체(體)는 바로 묘유(妙有)라는 것으로 향상 변함이 없는 자성(自性)자리를 가리키는 것이니 이 묘유를 묘향(妙香)이라 일컬은 것이다.  

    문수대, 우번대.. 등과 함께 묘향대는 현존하는 암자와 수도하는 분이 머물고 있다. 수도처답게 지리산 깊숙한 곳에 위치하며 기를 느낄 수 있고 영험한 느낌이 든다.

 

묘향대는 수백년 동안 토굴로 이어져 왔고 시작은 정확히 언제인지 모른다. 다만 조선시대에도 묘향대에 관한 얘기가 회자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모습으로 증축한 것은 70년대 초반이다. 화엄사를 새롭게 일으킨 도광 스님이 주변의 도움을 얻어 토굴에서 절 집의 모습으로 가꾸었다.

근처에 금강굴이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 또한 스님들에게는 유명한 수행처이나현재 그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지 알지 못한다고 한다.

 

 

 

퍼온글

지리산에는 옛부터 수도처로 10대(十臺)
>문수대.우번대.묘향대.서산대.무착대.향운대.문창대.영신대.향적대.금강대...

>반야봉 7대로
>영신대... 문수대, 묘향대, 종석대, 만복대, 금강대, 무착대, 서산대...
>천왕봉 5대로 향적대,문창대,영신대,소년대,향운대.등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공통점은 모두 뒤에는 깍아지른 절벽이거나 암벽이 있고 아래에는 석간수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만은 맞는것 같습니다.

지리산(智異山)에는 옛 사람들이 즐겨 올랐던 대(臺)가 여러 곳 있다. [대]는 높은 언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전망이 좋고, 풍수지리상으로 보아 명당에 해당하는 곳이다.
▲ 만복대(萬福臺) : 만복대는 구례 산동에 있다. [萬]이란 수의 개념이 아니라 모두, 전부를 뜻하는 무한의 개념이다. 따라서 만복이란 이 세상의 모든 복, 즉 복의 근원을 의미하고 그러한 장소라면 누구라도 복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구도의 길을 찾는 정확한 수도처는 아직 찾아내지 못하였으나 아마도 이름처럼 모든 이가 복받을 수 있는 너른 터이리라. 오르는 길은 정령치나 성삼재, 그리고 상위마을에서 묘봉치나 다름재를 거쳐 오를 수 있다. 
▲ 종석대(鐘石臺. 일명 우번대): 성삼재 뒤쪽의 바위봉우리이다. 백두대간상에 있으며 노고단에서 보면 종모양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바위에 부딪치는 바람소리가 돌 종을 울리는 소리와 같다해서 붙여졌다는 설이 있으며, 관음대라고도 한다. 우번암을 찾아가는 길은 정상에서 성삼재 방향으로 2∼3분 나아가면 조그만 봉우리가 하나 있는데 그곳에서 남쪽방향으로 길이 있다. 그 길로 조금 내려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우번암의 붉은색 지붕이 보인다. 그곳에서 좌측 길로 내려서면 된다. 우번대사가 깨쳤다는 곳이다.
▲ 묘향대(妙香臺) : 구례 산동의 반야봉 밑에 있다. 반야봉 정수리에서 묘시방향에 있다는 뜻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암자이다. 예전엔 토굴이었으나 화엄사 불사를 완성한 도광스님이 절집의 모습을 갖춘 한국 불교의 마지막 전설로 불리는 곳이다. 이곳은 개운조사(開雲祖師)의 전설로 유명한 곳이다. 지리산을 수백 번 올라가 본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200살이 넘는 개운조사가 신선이 되어 아직까지 생존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주능선에서는 삼도봉 옆 소금장수무덤 부근에서 반야봉 올라가기 전 표지판 뒤쪽으로 하나가 있고, 반야봉에서는 중봉 헬리포트 무덤 옆에 구상나무가 있는데 자세히 보면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전설에 의하면 금강대가 제일의 수행지였다고 전해지나 찾을 길이 없는 지금은 이곳을 으뜸으로 치고 있다.
▲ 무착대(無着臺) : 집착이 없다는 뜻이니 번뇌를 털기 위한 수행의 기본 조건이다. 지리산의 봉우리 중 유일하게 장등이라는 이름을 하고 있는 불무장등 아래에 있다. 삼도봉에서 불무장등으로 30분 정도 나아가면 불무장등을 오르는 바로 앞에 갈림길이 있다. 여기서 우측길로 20∼30분 정도 나아가다 우측의 희미한 족적을 따라 10분 정도 올라서야 한다. 입구 삼거리에서 직진마을로 내려오는 길이 있다.
▲ 향운대(香雲臺) : 구름향기란 뜻이니 즉 부처님의 말씀을 뜻한다. 광점동 어름터 독가에서 계곡을 건너 우측 능선을 붙어 2시간가량을 올라야 한다. 주능선에서는 국골사거리에서 직진하면 말봉을 올라서게 되고 이곳에서 능선상으로 두 번째 보조자일을 잡고 내려서는 곳을 지난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20여분 나아가면 있다.
▲ 문창대(文昌臺): 문수보살의 지혜가 햇살처럼 찬란하다는 뜻이니 곧 지혜를 구함이다. 예전에는 법계사 남쪽 2km지점의 암봉으로 알고 있었으나 1979년 진주산악회 학술조사반에서 법계사 서쪽 헬기장 옆으로 재정립하였다. 근거로 바위에 “고운최선생장리지소(孤雲崔先生杖履之所)”즉 고운 최치원선생의 지팡이와 짚신을 놓아두었던 장소라는 바위암각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 영신대(靈神臺) : 신령스런 산신이 계신 곳이란 뜻으로 예로부터 지리산에서 기운이 가장 왕성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들머리는 벽소령방향에서는 영신대를 오르는 나무계단을 오르기 전 우측으로 길이 있다. 그곳으로 10여미터 들어가면 철조망이 쳐져있고, 바위비탈을 지나 내려가면 영신대 좌측방향으로 나온다. 세석방향에서는 영신대 헬기장 정중앙에서 우측방향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경사가 완만하며 10여분후면 영신대에 도착할 수 있다. 영신대는 물이 좋고 가끔씩 무당들이 신내림을 받기위해 드나들어 신상과 재단이 정비되어 있고 가재도구들이 바위틈 곳곳에 숨겨져 있다.
▲ 향적대(香積臺) : 향기가 쌓여있다는 뜻이니 그 산의 기운이 모여있는 곳이다. 장터목 산회샘에서 좌측으로 10여분 들어간 곳에 있다는 설과 제석봉을 지나 통천문을 지나기전 오른쪽 아래에 있다는 설이 있다. 고서에 가장 많이 나오는 장소로 이륙의 지리산기, 김종직의 유두류록, 남효온의 지리산일과, 김일손의 두류기행록, 양대박의 두류산기행록, 박여량의 두류산일록, 유몽인의 유두류산록, 김선신의 두류전지 등에 보이며 천왕봉을 오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장소로 활용되었다.
▲ 문수대(文殊臺)는 함양군 마천면 군자리에 있다. 불교에서 문수보살(文殊菩薩)은 반야경을 편찬하신 분으로 지혜의 완성을 뜻하는 화신이다. 따라서 이러한 지혜를 구할 수있는 자리라함은 예사롭지 않을 수 없다. 노고단 정상부근에 있는 군사시설에서 우측 철조망을 따라 피아골 방향으로 나아가면 나오는 삼거리에서 좌측 바로 위에 단아하고 정갈한 건물로 서있다. 직진하는 길은 왕시루봉과 돼지평전 가는 길이다. 문수암의 전망은 지리산 명당으로 꼽히는 상무주암(上無住庵)보다도 시원하게 터져서 좋지만, 방향이 북향이라서 겨울에는 좀 춥다.
▲ 옥천대(玉川臺) : 선종에서는 칠당가람(七堂伽藍)이라하여 산사에 필수적으로 갖춰야할 7개의 건물로 불전(佛殿). 법당(法堂). 승당(僧堂). 고방(庫房, 혹은 廚庫). 산문(山門). 서정(西淨). 욕실(浴室)이 있다. 모름지기 수행자라면 외양은 물론 내면까지도 한 점 흐트러짐이 없어야함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수행자의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씻을 수 있는 구슬처럼 맑은 물이 있다는 의미처럼 불일 협곡에 있다. 찾아가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 곳으로 불일폭포 위쪽 상불재와 불일폭포가 나뉘는 삼거리에서 사태진 곳으로 어렵게 내려서야하며 그곳에서도 다시 20여분을 더 내려가야 한다. 
▲ 서산대(西山臺) : 피아골산장 뒤편 지능상에 있다. 산장뒤 비탈길을 1시간가량 올라가면 너덜강 지대같은 바위길이 있는 지점에서 좌측으로 비스듬히 5분여 나아가면 바위절벽이 있는 서산대가 나온다. 주능선상에서는 돼지평전 첫 번째 헬기장에서 내려오는 길이 있으나 인적이 희미하여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불일대(佛日臺) : 고서에서 청학동의 전설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불일폭포주변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왕왕있다. 아마도 험준한 산의 기암절벽 사이에서 떨어지는 물길 뒤쪽으로 들어가면 동굴을 지나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모습의 이상향을 찾아왔었던 듯싶다. 불일평전 위 불일폭포쪽으로 들어가면 불일협곡이 내려다보이는 장소에 터만 남아있다. 
▲ 상무주대(常無住臺) : 주인이 없다는 뜻이니 태초의 세상 이치와 같다. 북부능선에서 바라다 보이는 천왕봉이 압권으로 일명 칠암자코스의 삼정산 바로 아래 있다. 실상사나 마천 도마마을에서 삼불사, 문수암을 거쳐 오르는 길과 삼정에서 영원사를 오르는 도로를 따라 30여분 가다 우측지능으로 직접 오르는 길, 영원사를 거쳐 비깃재에서 오르는 길이 있다.
▲ 영랑대(永郞臺) : 영랑은 신라 화랑의 우루머리로 3천여 명의 화랑을 거느리고 산수를 마음껏 노닐었는데, 일찍이 이 봉우리에 올랐다하여 이렇게 불렀다. 하봉 부근 바위지대로 김종직은 영랑재(岾) 김선신은 영랑참(站), 유몽인은 영랑대(臺), 양대박은 영랑봉(峯)으로 기록하고 있다. 
▲ 소년대(少年臺) : 하봉을 지나 무덤가기 전 바위군의 어느 지점을 말하는 듯하다. 고서에는 푸른 절벽이 만 길이나 되며, 영랑참에 있는 것으로 기록된 것이 많다. 김종직의 유두류록과 유몽인의 유두류산록에는 ‘소년’이란 “영랑의 무리를 일컫는 듯하다”고 기록하고 특히 유몽인은 ‘천왕봉이 장로이고 이곳은 장노를 받들고 있는 소년처럼 생겼기 때문인 것 같다’는 의견을 곁들였다. 다만 남효온의 지리산일과에는 빈발암(영신사 부근)을 가는 길에 “향적사를 떠나 소년대에 올랐다. 솜대를 뚫고 계족봉을 지나 30리를 걸어 빈발암에 닿았다”라고 적고 있다. 

▲ 집선대(集仙臺) : 화엄사계곡 상류 노고단을 오르는 길 중간 코재 못미처에 있다.
▲ 청련대(靑蓮臺) : 노고단산장 남쪽 약 400미터지점 형제봉능선의 바위지대를 말하는 듯 보인다.
▲ 가섭대(迦葉臺) : 영신사터 북쪽 절벽에 있다.(이륙, 유몽인의 기록)
▲ 좌고대(座高臺) : 가섭전 북쪽 봉우리에 두 개의 바위가 우뚝하게 서 있는데, 그중 한 바위는 삼단으로 되어있어 아래는 반반하고 위는 뽀쪽하며 머리에 네모난 돌을 이고 있다.(김종직, 남효온, 김일손, 양대박, 유몽인의 기록)
▲ 창불대(唱佛臺) : 예불에서 오분향례를 염송하가나, 부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뜻하니 곧 구도에 정진함을 이르는 말이다. 김종직은 영신대부근 바위를, 김일손은 영신사 앞에 있다고 적었다.
▲ 금강대(金剛臺) : 지리산 최고의 수행처로 뱀사골 어디쯤에 있다는 설이 있었으나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김일손의 기록에 향적사 앞에 우뚝한 바위가 있는데, 올라 조망하면 흰구름이 감싸고 있는 기이한 무수한 봉우리들이 보였다고 적고 있다.
▲ 환희대(歡喜臺) : 김종직의 기록에 지장사에서 “1리쯤 되는 곳에 있다. 그 아래로 천 길쯤 되는 절벽이 있고 金坮庵·紅蓮庵·白蓮庵 등 여러 암자가 보인다“고 적고 있다.
▲ 의론대(議論臺) : 김종직의 기록에 나온다. “고열암 서쪽 능선에 세 개의 평평한 바위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이다. 향로봉, 미타봉이 모두 의론대 밑에 있다. 이 바위 밑에 노숙한 優陀가 살면서 고열암·신열암 등의 승려들과 대승·소승 및 돈오에 대해 토론하다 깨쳐서 의론대라 이름이 붙은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 지산대(芝山臺) : 어름터 암반에 음각된 각자가 발견되었다. 주민의 말에 의하면 지초(붉은색이 도는 한약재)가 많았던 장소라 한다.
▲ 문수대, 종석대(우번대), 묘향대, 서산대, 무착대, 향운대, 문창대, 영신대, 향적대, 금강대(미확인)를 <지리산 10대>라 하고,? 문수대, 묘향대, 종석대, 만복대, 금강대, 무착대, 서산대을 <반야봉 7대>라 하며, 향적대, 문창대, 영신대, 소년대, 향운대를 <천왕봉 5대>라 부른다.

금년에는 꼭 지리산 종주를 하겠다고 다짐을 했었는데 또 틀렸습니다.
종주기 좀 상세히 써 주세요.
한번은 꼭 가 보고 싶습니다 ^^*

노고단 대피소 연하천대피소 벽소령 대피소 세석대피소 장터목 대피소 로타리대피소등 있습니다
코스를 적당히 잡아서 쉬엄쉬엄 걷으면 될것 같습니다

긴 시간동안 지리산의 품에서 노니셨네요.
수고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비우고 왔습니다

부럽습니다.
지리산 단풍 구경좀 할려고하니 사진좀 올려 주세요.

네네네~

대단하신 영동양반님..부럽기도 하고 멋집니다
언제 가도 좋은 포근한 지리산 저두 해마다 갑니다
1박이나 아님 2박으로...정말 좋아요
내년에도 갈수있을지 건강을 잘 지켜볼랍니다
행복한 가을 소중하게 보내시길요

네네네(~) 봄에 철죽 필때 댕겨 오셔와요